아기에게 미디어 언제 보여줄까 시기에 대한 고민

우리 아기는 지금 29개월이고, 아직까지는 티비나 휴대폰과 같은 미디어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서 우리 부부가 미디어를 안 보여주는 좋은 부모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럴 수도 없는게 비록 지금은 우리 아이가 아직 아기라서 우리 마음대로 물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미디어와 관련하여 특별한 고민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상황이 결코 영원할 수는 없다. 아이는 계속 커나갈 것이고, 언젠가는 우리 부부도 휴대폰, 티비, 컴퓨터 등과 같은 미디어로 인해 아이와 여러 마찰을 겪을 날이 올 것이기에 이에 대한 고민도 미리 해야 한다.


미디어가 영유아에 미치는 영향과 우리 가정의 실태

아기에게 미디어를 보여주는 것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에 앞서 나의 개인적인 상황을 먼저 정리해 보자면, 우리 부부는 남들이 유난이라고 입이 닳도록 말할 정도로 둘 다 똑같이 사소한 것에 걱정이 많고, 예민하고, 또 건강염려증도 심한 타입이다. 그래서 남들로부터 '참 피곤하게 산다'라는 얘기도 듣고, '너희처럼 애를 키우면 두 명은 절대 못 키우겠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왜 이런 배경을 설명하냐면 이것이 우리 아이에게 미디어를 아직까지 보여주지 않은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유별난 염려증으로 인한 아기 미디어 사전 차단

출산 후 조리원에서의 2주의 시간 이후 아기를 집으로 데려왔다. 아기를 집으로 데려와서 며칠 지내 본 우리 부부는 집에 있는 티비를 옷장 뒤쪽으로 치우게 된다. 티비를 너무도 좋아하는 나에게는 엄청난 결심이었다. 하지만, 조심성이 넘쳐나고 걱정이 심한 우리 부부는 신생아가 집에 오니 티비에서 전자파가 막 나올 것만 같고, 또 티비를 켜 놓으면 신생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만 같아서 티비를 일단 치우고 본 것이다. 사실 당시에는 티비만 조심한 게 아니었다. 아기가 집에 오고 나서 상당 기간 동안 음식 냄새가 아이에게 안 좋을까봐 음식도 집에서 하나도 하지 않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이에게 안 좋을까 봐 집에서도 소근소근 이야기 하는 등 정말 온갖 유난을 다 떨면서 과하게 조심했다.

그렇게 염려증이 심한 우리 부부이니 아기를 키울 때 주의할 여러가지에 대한 정보를 병원에서도 접하고 또 검색도 하고 해보다가 미디어가 영유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둘 다 서로 망설임 없이 아이에게 절대 영상을 보여주지 않기로 다짐하게 된 것이다. 우리 부부가 지금까지 육아를 하면서 미디어를 아이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런 우리 부부의 예민하고 걱정많고 유난스러운 성격탓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애초에 미디어를 보여주는 것이 육아를 하면서 그 어떤 선택지에도 있지 않았기 때문에 폰으로 영상을 안 보여주면서 육아를 해도 특별히 더 힘들다는 생각조차 안하고 지금껏 지내왔다. 육아는 물론 너무 힘들지만, 폰으로 영상을 못 보여줘서 특별히 더 힘든 게 아니고, 그냥 원래 힘들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집에서는 미디어를 안 보여주는 부모들조차 가족끼리 외식을 간 식당에서는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않고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동영상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우리 부부는 이 또한 민감한 성격(특히 남편) 탓에 힘들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애초에 코로나 때문에 외식을 당연히 안 하는 분위기가 된지 너무 오래 되었고, 외식이 어느 정도 가능할만큼 아이가 큰 지금은 간이 많이 된 외부음식을 아이에게 먹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남편 때문에 외식을 자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자극적인 음식도 가끔씩은 먹여도 된다는 나와 남편의 생각이 좀 다르긴 한데, 남편이 그렇게나 조심스러워하니 나도 일단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협조하고 있다. 외식을 자주 못하니 식당에서 아이가 소란을 피우는 민폐에 대해 고민할 일 자체가 많지가 않아서 뜻밖의 혜택으로 미디어를 보여줄지 말지 선택에 있어 그 동안은 자유로웠던 것이다.


영유아 미디어 시청 관련하여 인상적이었던 것

내가 최근에 다시 이런 저런 정보를 찾아보면서 놀랐던 것은, 여러 영상이나 미디어를 어린 아기들이 봤을 때 그것이 뇌발달을 저해한다거나 당장 무슨 큰 문제를 일으킨다는 직접적인 과학적 근거가 아직은 이렇다 하게 엄청 구체적으로 나온 것은 없다는 전문가들의 이야기였다. 우리 남편이 여러 뉴스기사 같은 걸 본인이 검색해서 나에게 알려주는 편인데, 스마트폰 보여주고 이런 것에 대해 나에게 엄청나게 겁을 준 것과 달리 실제로는 현재와 같은 휴대폰 형태의 미디어 매체가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에 대한 의미있는 연구 결과가 엄청 충분하지는 않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미디어가 영유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생후 18개월 미만 아이들에게는 대체적으로 미디어 사용을 자제시키라는 분위기가 큰 흐름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아니면 별 영향이 없는지에 대한 연구가 오랜 기간에 걸쳐 충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깐 일단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뜻인 것 같다.

보통 아기에게 보여주는 미디어의 부작용으로 많이들 이야기하는 것이 언어발달 지연, 두뇌발달 저해, 뇌기능 저하, 집중력 방해 같은 것들이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이민주 육아상담소 영상에서 본 내용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그건 바로 아이들이 심심하다고 느낄 때 뇌발달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내용이었는데, 평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던 터라 인상적으로 느껴진 듯 하다. 

흔히 엄마들은 아이가 심심해하는 것 같은 반응을 보이면 엄마인 내가 뭔가 재미있게 못 놀아주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초조함을 느껴서 뭐라도 급하게 막 해주려고 한다. 그런데 이민주 선생님의 동영상 강의에 따르면, 아이들이 심심해하면서 무엇을 하고 놀지를 생각하는 활동이 뇌를 엄청나게 발달시킨다는 것이다. 반대로 동영상과 같은 미디어에 익숙해 있으면 심심할 때 바로 동영상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져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를 생각하는 창의적인 활동을 뇌에서 하지 않기 때문에 발달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평소 가정보육 하느라 집에서 놀아주면서 아이가 심심해할까봐 걱정이 심했는데 심심해 하더라도 조금은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위안이 되어 인상깊게 봤던 것도 같다.


미디어의 강한 자극과 중독성 경험

아이에게 핸드폰 동영상이 얼마나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느낀 경험은 나도 있다. 우리 아이는 미디어를 안 보여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휴대폰에 관심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엄청 관심이 많다. 휴대폰에서 뭔가 재미있는 것이 막 나온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내가 아이를 찍은 동영상을 볼 때 아이가 다가와서 보여달라고 할 때가 있다. 처음에 몇 번 아이에게 본인 동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자기가 나오는 영상을 눈을 반짝이며 재미있게 봤었다. 문제는 이제 그만 보자고 할 때부터였는데, 영상을 끄자마자 애가 엄청 울면서 아주 난리가 난 것이다. 눈물 콧물 빼고 우는 걸 달래느라 너무 힘들었다. 지금도 아이가 가끔씩 보여달라고 하면 그 관심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은 과일이나 요플레 같은 달콤한 간식 밖에 없다. 영상에 대한 자극을 자극적인 맛의 간식으로만 달랠 수 있는 것이다. 제지하기 힘든 아이의 모습을 몇 번이나 경험하면서 아예 동영상에 길들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내가 편한 길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참고로 만화나 유튜브가 아닌, 본인이 나오는 동영상을 보는 것 또한 미디어 노출이라고 한다.


아기 미디어 보여주는 시기 조율

그런데 최근에 읽은 아기발달전문가 김수연 박사의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이라는 책에서 본 건데, 아이의 언어이해력 수준에 맞는 적절한 미디어 노출은 오히려 아이의 인지 수준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실제로 엄마들의 경험담을 보면, 동영상을 통해 숫자도 배우고 알파벳도 익히고, 부모가 가르쳐 주지 않은 것들도 알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후기도 많았다. 특히 28개월간 가정보육을 하며 조금씩 보육이 아닌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요즘, 미디어를 통해 좀 더 아이 발달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또 하나 신경 쓰이는 것이, 미디어를 아예 접하지 않은 아이들이 뒤늦게 접하면 오히려 눈이 휙 돌아가서 어릴 때부터 조금씩 미디어를 봐왔던 아이들보다 스스로를 더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는 엄마들의 경험담이다. 아이가 커갈수록 미디어로부터 아이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차라리 조금씩 보여주고 또 시간이 되면 딱 끊어주면서 지금부터 스스로를 통제하는 훈련을 미리 하는게 중고등학생 때 하는 것보다 저항 없이 쉽게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요즘 좀 고민이 되고 있다.


부모의 철저한 통제 하에 미디어를 보여주는 시기 결정

여러가지를 종합해 본 결과, 미디어를 아이에게 보여주다가 끊는 것은 처음부터 안 보여주는 것보다 솔직히 훨씬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러므로 육아를 시작할 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모의 단호한 마음가짐이 가장 필요하다. 왜냐하면 영유아 시기에 아이가 접하는 미디어는 부모의 의지에 전적으로 달려 있기 때문에, 사전에 통제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미디어를 보여주어야 부작용은 피하면서 긍적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는 아기가 어릴 때부터 아예 미디어를 보여주지 않아서 미디어 매체를 통한 육아의 잠깐의 편리함을 처음부터 느껴본 적이 없었다. 영상 미디어를 제외하고 내가 썼던 방법은 아이가 놀러가서 친구나 가족과 찍은 사진을 인화하여 앨범에 붙여서 아기에게 보여주었고, 휴대폰으로는 귀로만 들을 수 있는 동화를 음원사이트에서 찾아서 음원으로 들려주며 동영상 미디어를 보여주는 것을 대신했다. 그렇게 지금 29개월까지 간신히 잘 버텨왔지만 그래도 앞으로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게 되면 그 후부터는 지금의 방식을 좀 바꿔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요즘은 어린이집에서 교육자료로도 미디어를 보여주기도 한다고 하고, 또 우리 아이가 친구들과 대화가 통하려면 모두가 다 보는 만화나 영상은 어느 정도는 보여주어야 아이들끼리 대화도 되고 할테니 말이다. 어차피 이제 아이가 크면서 미디어 시청은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아이가 미디어를 조금씩 접하며 통제할 수 있도록 부모로서 아이에게 좋은 방법을 찾아 함께 실천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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