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나이에 결혼한 후기

남편과 나는 둘 다 40대에 결혼했다. 처음 만난 건 내가 40세 되기까지 딱 2개월 남은 시점이었다. 나는 39세였고, 남편은 나보다 두 살 더 많은 41세였다. 그리고 1년 뒤에 결혼해서 지금은 아기도 한 명 키우면서 감사하게 잘 지내고 있다. 생각해 보면 20대부터 30대 내내 공식 커플인 적이 없었을 정도로 연애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언젠가는 결혼을 할 것이라는 믿음은 변함없이 아주 굳건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도대체 쥐뿔도 없이 무슨 자신감인가 싶은데, 그 때는 (남들은 비웃겠지만..) 약간의 신앙의 힘과 끌어당김의 법칙 같은 걸로 내게 배우자가 꼭 생기리라는 확신을 가졌고, 진짜 그거 하나 때문에 노처녀라는 주변의 온갖 압박과 무시를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남들처럼 결혼 적령기에 일찌감치 결혼을 했더라면 결혼 한 거 하나로 이렇게까지 다행이고 행운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40대가 되어서야 결혼을 해서인지 결혼이라는 것이 내게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이 남들과는 다르게 엄청 크게 내 삶에 자리잡고 있다.

결혼은 노력해야 할 수 있는 걸까

결혼을 하기 위한 노력으로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철저한 자기 관리, 결혼정보회사 가입, 이성의 심리에 대한 탐구 등 그 노력은 다각도로 있을 수 있다. 결혼은 노력해야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남편과 가끔씩 토론해 본 적이 있었는데, 노총각이었던 남편은 노력을 해야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고, 노처녀였던 나는 그와는 조금 반대의 입장이었다. 나는 평소에 어떻게 생각했냐면, 연애나 결혼이 쉽게 잘되는 사람들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소개팅 한 번에 바로 연애해서 결혼하거나, 아니면 우연한 기회로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어져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반면, 나처럼 연애나 결혼이 잘 안되는 사람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만남이 길게 안 이어지고 매번 차이고 이러기 때문에, 결혼은 노력같은 걸로 절대 안 되고 운명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결국 결혼도 될놈될이라는 생각을 했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결혼에 있어서는 노력이 부질없는 것이라고 생각한 나도 어느 정도는 본의 아니게 노력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그나마 40대에라도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결혼은 약간의 노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최근에 생각이 좀 바뀌긴 했다. 

실제로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결혼을 위해 내가 노력했던 것은, 20대 중반부터 소개팅과 선을 꾸준히 나갔다는 점이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 소개팅이나 선으로 누군가와 잘 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이게 노력한 거라는 생각은 안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비록 성사되지 않은 만남이라도 의미있는 만남으로 그 역할들을 해주었다. 내 기준으로 '소개팅=친구나 지인이 해주는 것', '선=부모님이나 친척이 해주는 것'으로 정해두고 있는데, 소개팅과 선을 20대 때부터 30대 후반까지 한 걸 모두 합치면 대충 50회 이상 했는데, 이렇게 들어오는 소개 자리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러가지로 내 자신을 좀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만남은 첫눈에 반해서 불꽃 튀는 연애를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이상을 가지게 된 데는 과도한 환상을 심어주는 티비 드라마나 만화, 로맨스 소설 같은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은데(내 딸에게는 절대 이런 거 믿지 말라고 계속 가르칠 예정), 나는 직업이나 경제력 같은 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누가 봐도 멋있을만한 사람을 많이 찾았던 것 같다. 그런데 소개팅과 선을 계속해서 나가고 또 내가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내가 찾는 멋진 사람은 티비에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런 멋진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한들 그런 사람은 이렇게 소개팅이나 선자리에 굳이 나올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리고 어쩌다 나온다 하더라도 그런 멋진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릴 때는 내가 되게 매력적이고 누가 봐도 좋아할만한 여자라는 착각을 열심히 했는데 세상에 나가 남자를 만나보니 나는 그렇게까지 매달려서 쟁취할만큼 마성의 여자가 절대 아니라는 현실 파악을 했다고나 할까(그래서 나도 딸에게 너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다 이쁘고 잘난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걸 열심히 알려 줄 예정..). 나는 이걸 너무 뒤늦게 알아서 소개팅이나 선에 나가서 너무 콧대 높고 차갑게 상대방을 대했고 행여나 상대가 마음에 들어도 일부러 도도하게 굴었는데, 아마도 그래서 결혼 적령기가 지나서까지 누구와도 연애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걸 뒤늦게 깨달은 뒤로는 소개팅이나 선에 나가면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가 나와도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만났고, 또 내가 차여도 비참하긴 하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소개팅과 선을 열심히 나갔다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통하여 실패도 많이 해 본 후 현실을 파악하여 결혼을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출 수 있게 되었으니, 나가기 싫은 소개팅과 선이라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임해 본 나의 '노력'은 결혼을 할 수 있게 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눈을 낮춰야 결혼할 수 있을까

많은 소개와 선에 나가면서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 중에 또 하나가 눈이 많이 낮아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눈이 낮아졌다는 게 남자가 궁하니 아무나 막 만났다는 뜻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눈으로 남자를 보는 관점을 바꿀 수 있었다는 뜻이다. 나의 경우에는 남자인 친구도 잘 없고, 또 타고난 여자로서의 매력 같은 게 별로 없어서 강하게 들이대는 남자도 별로 없어서 남자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그렇다 보니 소개팅이나 선이라도 안 나가면 남자에 대해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환상을 계속 품고 살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다행히 부모님이나 친척이 해주는 선에 꾸준히 나가면서 그 안에서 이상형이랑 완전 떨어진 남자가 나와도 놀라지 않고 나름 적응도 하면서 어떤 평균 같은 것이 생겨서, 다음에 소개 자리가 생겨서 나갔을 때 상대방이 내 취향이 많이 아니어도 이 정도면 그래도 소개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사람 중 평균 이상은 된다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었다. 실제로 나는 남편을 소개로 만났는데, 내가 원하던 이상적인 첫인상이 결코 아니었다. 첫눈에 막 어떤 강력한 느낌이 오지도 않았고, 내 눈에 잘생겨 보이거나 하지도 않았다. 첫만남에서 저녁식사까지 할 정도의 호감도 들지 않아서 차만 한 잔 마시고 두 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의 첫인상은, 솔직히 아주 예전의 나였다면 두번째 만남은 갖지도 않았을 정도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했던 그 많은 소개팅과 선을 되돌아봤을 때, 그래도 마흔을 앞둔 내 나이에, 이만큼 나이에 비해 그래도 젊어보이는 남자를 소개로 만나기는 쉽지 않고, 이만하면 그래도 첫만남치고 최악까지는 아니니깐 두번째 세번째 만남을 통해 이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좀 더 찾아보자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남편을 만날 당시 내 마음가짐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만 빼고는 다 포기하고 눈을 낮추자는 마음이었다. 이 눈을 낮춘다는 게 막 억지로 상대방이 너무 싫은데도 내가 지금 나이도 먹을대로 먹고 몹시 비굴한 상황이니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는 게 아니고, 내가 가진 능력이나 자질에 맞는 남자인지 제 3자의 눈으로 봤을 때 어떨지를 생각해 보며 객관적으로 나를 평가하면서 남자를 만나보자는 것이었다. 이게 남들이 말하는 눈을 낮추는 것 아닌가? 그 동안은 나 자신이 가진 것(나이, 외모, 직장, 재산 포함 모든 것)에 비해 너무 저 위의 높은 기준으로 남자를 찾으려 했는데, 그 높은 기준의 남자에 내가 과연 맞는 여자인지를 냉정하게 따져 보면서 나 자신의 눈과 기준을 다시 재정비하였다. 그 후에 만난 남자가 바로 지금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처음엔 별로였지만 세 번, 네 번 만나볼수록 더 좋아졌다. 물론 만날수록 장점만 보인 건 아니고 단점도 함께 보였다. 하지만 장점과 단점을 함께 보면서 내가 감당할만한 단점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것도 나름대로 눈을 낮춘 것 아닌가? 진짜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인성, 인품, 그 사람의 품성, 습성, 뭐 이런 것들만 괜찮다면 나머지는 어느 정도 사랑의 힘으로 감싸볼만 한 것 같다. 

남편도 아마 나를 만나면서 눈을 많이 낮췄을 것이다. 나의 남편은, 지금 보면 너무 매력있고 착하고 다정한 괜찮은 남편이지만, 일반적인 여자들이 좋아하는 결혼할 남자의 조건을 갖추지는 못했다. 사업하다 파트너를 잘못 만나 빚도 있고(지금은 거의 해결됐지만), 그럴듯한 직장인도 아닌 1인 자영업자이고, 공부에 별 취미가 없어 대학도 다니지 않았다. 남편이 마흔 넘어까지 결혼을 못했던 건 아마도 그런 조건들이 여자들 눈에 차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본인도 그런 걸 알았기 때문에, 당시 서른아홉이었던 나와의 선을 거절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나는 나이 때문에 만나기도 전에 까인 적도 있어서 나와 나이 차이도 많이 나지 않는 남편이 내 나이를 듣고도 소개 자리에 나와 준 것 자체가 호감을 느끼게 한 요소이기도 했다.

늦은 나이의 결혼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나는 30대 때 나보다 한참 나이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는 걸 보면서, '그래, 나도 늦게라도 결혼 할 수 있어'라는 희망을 가지곤 했었는데, 내가 마흔이 넘어서 혼자 생각해 보니 그런 걸 부추기는 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고, 결혼이 하고 싶고 언젠가 할 마음이 있다면 그냥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빨리 하라고 권하는 게 오히려 더 진정성 있는 조언인 것 같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해 보니 나이라든가 노산이라든가 등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발목을 잡을 때가 상당히 많고, 그럴 때마다 좀 더 어린 나이에 결혼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자식이 생기고 나니 아이에게 좀 더 젊은 부모가 되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초조함도 상당히 크다. 이런 게 남 이야기일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내 이야기가 되어서 보니 그 무게감이 엄청나게 느껴지는 것이다. 늦게라도 결혼을 하게 된다면 너무나 축하할 일이고 축복을 빌어줄 일이지만.. 나이로 인한 어려움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생각이 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한시간이라도 더 빠른 결정을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우린 늦게 했으니 그저 무병장수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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